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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ME 30주년 기념 음악제 영상물 감상 희망의 식탁 (Table of Hope)
이 영상을 보고 나의 마음에 와 닿은 장면들과 대사들을 생각하면 내 삶을 반성하게 해준다.
먼저 작가 자신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그릴 때 그 그림에 등장하는 사도들 대신에 자신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그리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게 되어 기뻐했지만, 나중에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그 그림 속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것이 단지 스케치한 인물들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생명을 가진 자신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힘겹게 사는 어린이들로서 보이게 되었고, 그래서 그림 속의 아이들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작가 자신은 이 그림 속의 어린이들의 모습을 현실 속에서 매일 보게 되는 일이기에 그들이 불쌍한 어린이들이면서도 그들은 마치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 양 그러한 모습에 익숙해 버린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나는 저자 자신이 한 고백, “그들의 가난에 익숙해진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말이 내 양심을 찌르고 있음을 본다.
나는 첫 번째 등장인물 “네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그녀는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으며, 죽은 자들의 집인 묘지에서 살면서 살아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존재로 살아간다. 자기를 낳은 엄마에 의해 버려지고, 살기 위해 묘지 청소를 하고 있는 소녀이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자처럼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살고 있다. “살아 있지만 죽은 자” 라는 말, 결국 죽음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이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묘지는 그녀에게 살아가는 희망을 주고 있다. 묘지 청소를 통해 약간의 수입이 생기고 그것으로 살아가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자들이 오히려 산자에게 생명을 준다. 그녀는 아무도 하기를 싫어하는 죽은 자들의 아파트인 공동묘지를 돌보면서 자신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또 다른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는 기쁨을 느끼며 산다. 그녀는 거의 아무 것도 없이 살아가면서, 그날의 소유를 다른 이에게 나누며 세상에 생명을 주고 있다. 나눔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며, 세상에 생명을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며, 그러할 때 그리스도의 가난에 참여하면서도 참 기쁨과 생명을 누리며 사는 거룩한 사람으로 보인다. 인간은 어떠한 조건 속에서 나눔과 생명을 주는 삶을 통해 거룩해 질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희망을 준다.
나는 이 영상을 보면서 나의 많은 삶을 반성하였다. “네네”는 참으로 그런 면에서 나보다 더 낫다. 나는 이 영상 속에 나오는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을 늘 상 현실에 있는 자들로 당연시 여기고, 그들의 삶의 개선을 위한 현실적 노력에 게을리 한 나의 모습, 그리고 나의 소유와 지위와 존재에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데도,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찾고 또 그것에 만족하지 못했던 나의 삶을 돌이켜본다.
앞으로의 나의 삶은 나에게 주신 모든 조건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고, 이렇게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동료 인간들을 위한 더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결심을 다짐해 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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